하루 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펠로 시작한지 두달이 지났다. 많은 up and down 이 있었고, 전에 경험하지 못했었던 마음의 요동침이 있었다. 나는 원래 control freak인데 , 아무것도 내 control 안에 있지 않으니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지금 내 현재 상황이 control 이 안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일년 후, 이년 후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보이지 않으니 정말 마음속에서 꽤 큰 혼란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내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상태의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문득 문득,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벌써 거의 40이 되었고, 우린 때때로 자주 평생 오늘처럼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인생은 너무나 짧다.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아닌가. 누구든지 현생에서의 종착점은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 허준이 교수의 축사를 보고, 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야지 라는 말 말고 더 내 마음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말이 없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바로 저 말을 나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를 충실히 산다고 하면 뭔가 많은 일들을 해내고, 체크마크가 많은 보람찬 하루를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거든. 좀 덜 충실히 살아도 괜찮다. 

 

하지만 하루 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 언제나 내일이 있을 것처럼 짜증내지 말고, 지금 경험하자. 그리고 사랑하자. 또 사랑하자. 내일이 없더라도 괜찮을 만큼이라는 말은 너무나 오만한 말이지만, 적어도 하루 하루를 온전히 사랑하고, 경험하자. 

 

영화 Arrival 에서 Amy Adams 가 딸과 결국 헤어질 것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또 딸과 함께 할 시간을 선택하는 장면이 요즘 문득 문득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는 자녀가 없었고, 지금은 자녀가 있고, 그때보다는 지금 조금 더 그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우리를 살게 하는건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다. 자꾸 고개를 드는 불안한 마음을 내려 놓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  

 

 

 

허준이 교수 졸업 축사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15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 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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